한끼의 식사기금

보도자료

<평화신문> [자비의 특별 희년] ‘한끼의 식사기금’ 이사장 윤경일 아우구스티노

2016.11.03

 

[자비의 특별 희년] ‘한끼의 식사기금’ 이사장 윤경일 아우구스티노 

질병만 아니라 사람과 사회까지 고치는 ‘큰 의사’ 돼야죠

 

 

 

▲ 에티오피아의 미혼모 자녀들과 함께하고 있는 한끼의 식사기금 윤경일 이사장. 윤경일 이사장 제공

 

 

▲ ‘한끼의 식사기금’ 소식지.

 

▲ 캄보디아 오지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윤경일 이사장.

 

12년간 휴가 대신 오지 누벼

의사이지만 의사 가운보다도 편안한 조끼에 등산용 모자가 더 잘 어울리는 이가 있다. 12년 동안 휴가를 포기하고 에티오피아와 캄보디아 등 가난한 나라의 구호 현장을 누비고 있는 ‘한끼의 식사기금’ 이사장 윤경일(아우구스티노, 58)씨다.

국제구호단체인 (사)‘한끼의 식사기금’(www.samsal.org)을 설립한 윤씨는 하루 두 번 출근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오전에 부산의료원으로 출근해 진료를 마치고 오후 5시가 넘으면 한끼의 식사기금 사무국이 있는 해운대로 다시 출근한다.

하루종일 정신장애를 앓는 이들을 진료하면 집에서 쉬고 싶을 법도 한데, 늦은 저녁까지 세계 곳곳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이들의 구호 업무를 본다. 해외 3개(방글라데시ㆍ에티오피아ㆍ캄보디아) 지부에 있는 각 지부장과의 화상회의를 통해 현지 구호상황을 보고받고 조율한다. 해외에는 20여 명의 현지 직원이 있다. 

예민한 체질 탓에 1년에 3~4차례 구호 현장에 다녀오면 그는 눈병과 습진, 설사 등을 얻어온다. 미얀마에서 보완요원에 적발돼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고, 캄보디아 오지에서 폭우로 도로가 끊겨 강으로 추락할 뻔한 일도 있었다.

“국제구호 일이 힘들다 보니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버리고 싶다가도, 하느님이 십자가를 다시 짊어질 힘을 주십니다. 나눔은 단지 수혜자만을 위한 일이 아녜요. 제 자신을 성숙시켜 줍니다.”

윤 이사장이 한끼의 식사기금을 설립하게 된 건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서 정신과 진료 봉사를 한 게 첫 계기가 됐다. 1993년부터 17년 동안 진료봉사를 하던 윤 이사장은 어느 날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막연한 갈증을 느꼈다.

“정신분열병 환자를 치료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국내 봉사도 좋지만 뭔가 1% 부족하고 허전했습니다. 지구촌 저편에는 여기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이 많을 텐데 하면서요. 그때부터 마음은 머나먼 그곳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의식 속에 국제 구호 현장으로 떠나고 싶은 갈망을 품은 그는 9ㆍ11테러 후 형성된 아프가니스탄 난민촌 현장 소식과 외국인 노동자 진료 봉사를 하면서 품었던 꿈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한 달 한 끼 굶고 그 식사비로 생명 구하자

그는 2004년 9월, 친구와 지인 12명을 모아 첫 발기인 대회를 열고 두 달 후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한 달에 한 번 한끼를 굶고, 그 식사비로 한 생명을 구하자’(Skip a Meal Save a Life)는 의미로 단체 이름을 한끼의 식사 기금으로 정했다.

그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와 절대 빈곤층이 사는 오지를 찾아다니며 학교와 도서관을 지어주고, 빈곤 퇴치를 위한 각종 구호 사업과 자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윤 이사장은 4년 전, 방글라데시의 라즈크리시나뿔이라는 오지의 마을 사람들에게 학교를 지어준 일을 잊지 못한다.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서 렌터카를 타고 여섯 시간을 달려 걷기 시작했는데 길이 끊어지고 강이 나오는 거예요. 보트를 타고 30분을 더 가니 외딴 섬이 나왔습니다.”

주민들은 농사를 지었지만 대부분 소작농으로 곡물을 주인에게 바쳐야 해 정작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우기가 되면 농사짓던 땅은 사라져 어부로 생계를 잇고 있었다. 마을에 의료 시설은 전혀 없고,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은 학교 건물이 마을에서 유일한 건물이었다.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얼굴을 덮었고, 빗물은 줄줄 샜다.

“가난한 사람들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끔찍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어 하지 않지요. 마을 이장은 초등학교를 새로 지어달라고 했고, 한끼의 식사기금은 3000만 원 예산으로 학교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공정률이 60%에 달했을 때 비바람과 폭우로 학교 건물의 담이 무너져내렸다. 확인해 보니, 부실공사를 한 공사 업체의 소행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대성통곡을 하며 까무러쳤다. 품었던 기대감이 무너져내리자 주민들은 “고통 속에 살다가 웬 횡재인가 했다”는 둥 자조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윤 이사장도 가슴이 멨다. 그러나 그는 “인명 피해가 없고, 완공되기 전 부실 공사임을 알았으니 다행”이라면서 “여러분의 마음으로는 못할 게 없다, 다시 희망을 품고 학교를 짓자”고 다독였다. 학생들과 부모들은 신이 나 만세를 불렀다. 윤 이사장에게는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함께 아름다운 결실로 꽃피운 소중한 기억이다.

“구호 현장에서는 굶주림으로 인해 구겨진 자존심을 휴지통에 던져 버리는 장면도 봤고, 그 휴지통 옆 척박한 모래땅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 모습도 봤습니다. 그들이 고통스러운 눈물을 흘릴 때 한끼의 식사기금이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고자 했습니다.”

현재 한끼의 식사기금 후원자는 4000여 명이다. 해마다 개인과 단체에서 들어오는 5억 원의 후원금으로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닥터 노먼 베순처럼

윤 이사장은 캐나다 출신의 흉부외과 의사인 노먼 베순을 좋아한다. 노먼 베순은 보건 의료 전문가로, 공중보건제도 확립에 앞장섰다.

“노먼 베순은 질병은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 의사’라고 했습니다. 질병과 사람, 사회를 모두 파악하고 고치는 의사는 ‘큰 의사’라고 했어요.

저는 큰 의사가 마음에 끌립니다.(웃음)” 

이지혜 기자 

 

 

 

원문 :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58792&path=201611